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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ITCH BOYS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리처드 헤인스(Richard Haines)는 현재 뉴욕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아티스트다. 블로그로 시작해 인스타그램까지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이 영리한 중견 작가는 아리따운 남자를 주로 그리는 명랑한 게이인가 하면, 패션쇼마다 사뭇 진지한 얼굴로 프런트 로에서 1달러짜리 색연필을 놀리는 노련한 전직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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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뉴욕을 찾았다가 패션 디자이너로 장장 30년의 우회를 거쳤지만, 그래서 리처드 헤인스와 드로잉의 관계는 더 애틋해졌다. 그와 협 업한 무어앤길스(Moore & Giles)의 디렉터 브레넌(Brennan)의 말을 빌리면 “그 의 작업은 자랑스럽게 불완전하고, 전형적으로 남성적이며, 신선하게 현대적이다 (confidently imperfect, quintessentially masculine and refreshingly modern).” 프라다, 드리스 반 노튼, 시키 임 같은 콧대 높은 브랜드들은 크레용을 든 그의 손에 아낌없이 옷감을 넘겨준다. 한창 바쁠 컬렉션 시기를 맞아 물감으로 얼룩져 있을 그 의 작업실을 상상하며 정성스레 메일을 띄웠다. 뉴욕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 분 그렇듯, 그의 대답에는 어디에나 느낌표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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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루엘> 10주년 호다. 당신의 일러스트 커리어도 거의 10년을 채웠더라. 자자한 명 성도 이유였지만, 그런 인연도 인터뷰를 청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매일 업데이트하던데, 지금은 기분이 어떤가? 10주년을 축하한다. 앞으로도 모든 일이 잘되길! 나 또한 2008년에 시작했으니 10주년을 기념할 날이 머지않았다. 평생 꿈꿔온 삶을 사는 요즘이다. 삶이 내게 준 기회와, 내게 무 한한 지지를 보내고 내 작품을 흥미롭게 여겨준 모든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언젠가 한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로 도쿄, 파리와 함께 서울을 언급했더라. 서울에 대한 인상이 어땠기에? 2015년 톰보이 컬래버레이션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생기가 넘치는 도시다. 20년 전쯤 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게 변했더라. 거리에서 온 통 생기발랄함이 느껴진다. 쇼핑하고 커피숍을 방문하는 동안 K-Pop이 여기저기서 들리 고, 도심과 교외에는 엄청나게 ‘힙’한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민속 박물관을 방문한 게 기억에 남는데, 한국의 역사와 예술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단도직입해서, 남자만 그리는 이유가 있나? 당신이 게이이고, 남성복 디자이너로 30년 가까이 일했다는 사실 외에. 당신이 나열한 것 말고 다른 게 있는지 모르겠는걸! 음… 개인적으로 남자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더 능숙하다고 생각한다.

딸 지탄(Jitan)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어려서부터 함께 나란히 그림을 그릴 정도로 친했다던데. 이제 벌써 열아홉 살이 되어 사진을 전공하고 있다고 들었다. 맞다. 내 딸 지탄은 정말 환상적인 아이다. 곧 스무 살이 되는데, 칼리지에서 사진으로 2학 년 과정을 밟고 있다. 함께 지내지 못하는 대신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받는다. 지탄이 요즘 에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을 나와 공유한다. 딸에게 많이 배운다. 방학에 뉴욕 에 놀러 올 때면 여기 부시윅(뉴욕 브루클린 북부 지역)에서 빈티지 숍을 방문하고 함께 미용실에 가고… 그냥 말 그대로 놀러 다니는(hang out) 거지, 뭐.

당신의 그림을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나? 선? 색채? 아니면 그림마다 붙이는 재치 있는 제목들? 선(line)이라고 믿고 싶다. 감정 표현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니까. 내 드로잉은 이리 튀 고 저리 날뛰는 선들 빼면 시체 아니겠나.

당신 드로잉의 거친 선들을 보면, 오랜 고민 없이 아주 즉흥적으로 그린 것 같다. 드로잉 하나에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드로잉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런웨이 현장에서 그릴 때는 정말이지 초 단위로 그려 넘긴다. 초상을 그릴 땐 모델을 연구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보통 5분에서 10분 사이다. 캔 버스에 하는 회화 작업은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다시 캔버스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요즘 새로 시도하는 분야라서.

드로잉 할 때 어디부터 그리나? 항상 머리부터 시작한다. 드로잉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고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머리부터 시작해 아래로 그려나가는 방법 외에 다른 걸 상상할 수가 없다.

당신은 일러스트가 사진에 대한 ‘미각 중화제/입가심(palate cleanser)’이라고 말한다. 딸 지탄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을 택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이 사진과 구별되는 지점은 뭐 라고 생각하나? 사진과 일러스트의 차이는 너무 많다. 둘 다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고 예술가의 시각에 따 라 대상을 조작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드로잉 할 때는 선과 모양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Port> 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를 보니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 옷을 만드 는 과정을 이해하게 됐고, 그로써 자신만의 드로잉 스타일을 찾았다고 답했더라. 디자이 너로서의 경험이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측면에서 더 과감한 표현을 시도하 는 데 도움이 됐나? 디자이너로 수십 년 일하면서 의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런 실질적 지식이 드로잉 할 때 자신감을 부여한다고 본다. 주머니가 어느 지점에 가고, 라펠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눈에 선하니까 ‘꼴리는’ 대로 과감하게 그을 수 있거든.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디테일이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2013년 <Opening Ceremony>와 진행한 인터뷰를 보니 디자이너로서의 일에도 꽤 열정 적이었던 거 같던데. 요즘 눈여겨보는 브랜드가 있나? 컬래버레이션을 해보고 싶은 브랜 드라거나. 프라다나 드리스 반 노튼, 오를바 브라운과 일했을 때는 그들이 나를 지목했다. 나는 먼저 협업을 제안하는 쪽은 아니다. 브랜드들이 먼저 나에게 접근해오는 게 좋다. 그래야 내가 결정권이 더 많아지니까. 지금도 그냥 지켜보는 중이다. 이와 별개로, 요즘은 소규모로 내 컬렉션을 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믿을 만한 제조사와 계약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은 크리스티앙 베라르, 알베르토 자코메티, 에곤 실레 그리고 툴루즈 로트레크 등의 작가를 좋아하며, 인스타그램에 사샤 기트리 감독의 1936년 작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같은 흑백영화 클립도 종종 올린다. 20세기 초반과 사랑에 빠져 있는 거 같아 보이는데. 최근 본 영화나 읽고 있는 책이 있다면 말해달라. 정확히는 20세기와 사랑에 빠져 있다. 정말이지 드라마 같은 시대였다. 물론 다른 시대 에도 매력을 느끼긴 한다. 요즘은 발자크의 작품을 주로 읽는다. 아주 인간적인 이야기들 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본성은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제 임스 볼드윈의 작품도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현대적이고 지극히 미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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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입양딸 지탄을 첫손가락에 꼽는 ‘딸바보’ 게이 아빠다. 그녀가 어릴 땐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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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예린(피처 어시스턴트 에디터)

출처 루엘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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