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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100

사심을 듬뿍 담아 <루엘>이 애호하는 서울의 공간 열 곳을 골랐다. 그리고 공간 주인들에게 아홉 곳씩의 공간을 추천받았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게 단골집을 소개하듯 허물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100곳의 이름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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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bar.jpg 김수랑 대표’s Pick

오벌 때로 타자기같고 때로 태블릿 PC 같기도 했겠으나, 이미지로 빗대자면 <루엘>이 기사를 기획하고 페이지에 눌러 담는 자세는 늘 연필에 가깝고자 했을 테다. 단단하고도 아름다워 자꾸만 쥐어보거나 죽 그어보고 싶어지는 겟코소 8B 연필 같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구점 오벌에 들어설 때마다 황홀해지는 데에는 채광이 좋고 단정한 인테리어도 한몫하겠으나 아무래도 그 안을 채운 물건의 내공 덕이 크겠다. 김수랑 대표는 산지를 따지지 않고 오직 마음에 드는 스테이셔너리를 모았다는데, 둘러보면 그를 관통하는 특정한 요건이 있어 보이긴 했으니까. 유려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대신 본연의 용도에 충실한 형태를 띠고 있을 것. 그리고 그 견고함이 차고 넘쳐 못내 아름다울 것. 파피에르 라보, 론가, 겟코소, 포트 스탠더드…. 저마다의 내력과 구성을 가진 물건들이 천연덕스럽게 쌓이고 겹친 풍경에서 전해지는 흐뭇함은 분명 형형색색의 대형 서점 문구류 공간이나 매끈한 고가 펜으로 가득한 만년필 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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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bar.jpg 권용식 대표’s Pick
 b2프로젝트  유명 가구 컬렉터 중에는 가구를 컨테이너 박스 단위로 거래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브로커에게 대부분의 매수, 매입 과정을 내맡기고 전화로 의사 결정만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했다. 권용식, 변재희 대표는 직접 가구를 보러 1년에도 몇 번씩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라 했고, 의자 하나를 사기 위해 몇 년씩이고 고민한다고 했다. 성실함이 미덥기도 했거니와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b2 프로젝트의 실내는 언제나 단정했으나, 그 안에는 업계 관성을 벗어나는 데에서 오는 별나게 생동하는 기운이 떠돌았다. b2프로젝트는 특정 ‘지역’의 가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 ‘미드 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이라 불리는 1950년대 가구를 다룬다. 북유럽은 물론 서유럽, 동유럽, 아프리카까지 아우른다. “무엇이 잘 팔릴지는 알겠는데 자꾸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오게 된다”는 권용식 대표의 푸념도 물론 특유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큰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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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bar.jpg 임성은 대표’s Pick

헬카페 스피리터스  헬카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의 생각은 그랬다. ‘헬이라는 단어와 카페라는 단어를 붙일 수도 있구나.’ 그 내실도 이름만큼이나 별났다. 푸른빛이 도는 감색 벽돌과 목재로 구성된 묵직한 실내 곳곳을 키치한 피겨들이 장식했고, 커피는 바닥에 새 그림까지 새겨진 우아한 잔에 담겨 나왔다. 대표들은 단정하게 차려입고는 늘 별나게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누군가 원두나 당근 주스, 치즈 케이크에 대해 물을라치면 열띤 어조로 내력을 설명했다. 이촌동에 지어진 2호점 스피리터스가 카페 겸 바로 구성된다고 들었을 때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직접 만들고 칠하고 저렴한 것들로 채웠다는 1호점 로스터즈보다야 훨씬 멋스러워졌지만 곳곳을 채운 피겨도, 메뉴에 ‘짜파게티 5만원’이라고 써놓는 재기도 여전하다. 그리고 헬카페가 가진 컨셉트의 느슨함에 대해 이토록 성실히 묘사하는 이유는 물론, 헬카페의 요체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커피든 술이든 헬카페가 만드는 음료의 맛은 여전히 서울에서 비견할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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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bar.jpg 황재환 대표’s Pick
팔러 팔러(parlour)는 영어로 응접실을 뜻하는 단어. 확실히 팔러에 들어설 때면 늘 누군가의 집 현관에 들어선 손님처럼 두리번대게 된다. 특정 이미지를 표방하려 일사분란하기보다 하나하나 개별적 취향을 간직하고 있는 구성 때문이다. 서촌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한옥 주택 건물에서부터 턴테이블과 형형색색의 바이닐, 한쪽 책장을 빼곡히 채운 만화책,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사탕 그릇, 그리고 ‘그 그릇은 스페인에 갔을 때 산 건데’ 하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두런두런 설명하는 황재환 대표의 태도까지. 팔러에서 만날 수 있는 구두들도 황재환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네이버에 검색했을 때 나오지 않는’ 구두들이다. 어디서나 다루는 구두는 선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유명하지 않으나 자기만의 스토리를 갖춘 브랜드들을 발굴하듯 소개하기로 한 것이다. 바버샵에서 유명세를 탔던 버윅부터 안드레 센드라, 라즐로, 노만 빌라타까지. 대부분 100년은 족히 된 브랜드들인데, 더구나 팔러에서 갖춰놓은 것은 대개 특별히 주문한 모델이다. 좋은 취향만큼 좋은 대접이 없다던가. 팔러에서 구두를 살 때 늘 ‘극진히 대접받은’ 기분으로 문을 나서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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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bar.jpg 은광표 대표’s Pick

까사델비노 은광표 대표는 와인 애호가를 꼽을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인물. 하지만 정작 그의 집에는 와인이 한 병도 없다고 했다. 말인즉슨, 와인을 보관하기 시작하면 가치가 올라갈수록 마시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 마셔버린다는 것이다. 청담동 중심부에서 15년간이나 와인 바의 대표 격으로 자리매김해온 까사델비노의 내력은 와인을 대하는 은광표 대표의 개별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서울 시내 와인 바 중 가장 많은 와인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갓 입점한 저가 와인을 주문해도 실패 확률이 적기로 유명하다. 저가 와인도 구색 삼아 들이는 법 없이 하나하나 꼼꼼히 검증하기 때문이라 했다. 통상 와인 바에서 치즈나 크래커 같은 것만 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식사 메뉴도 풍성하게 갖추고 있는데, 스테이크부터 모둠 치즈, 라면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와인의 집’이라는 청담동 와인 바에 붙기에는 다소 온화한 이름처럼, 와인을 즐기려는 마음과 무관한 그 어떤 당위에도 얽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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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bar.jpg 김슬옹 대표’s Pick
심야오뎅 플로리스트인 김슬옹 대표가 술과 오뎅을 파는 이유는 ‘밤에 잠이 안 와서’라고 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다 고민 끝에 자취방 근방에 밤에만 운영하는 가게를 열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서울에 출입하는 소고깃집이 오직 한 곳, 돼지고깃집도 오직 한 곳, 커피는 에스프레소밖에 마시지 않는다는 이 까다로운 남자가 운영하는 가게는 그리 녹록지 않다. 해산물 함량이 높은, 신선한 오뎅을 만드는 부산의 업자에게서 재료를 납품받아 진하게 우린 육수에 끓여낸다. 테이크아웃을 요청하는 손님이 있을 때는 육수와 오뎅을 따로 담아 예쁘게 포장한다. 부암동 언덕 깊숙이 자리한 가게는 차를 몰고 찾아가기도 쉽지 않고, 가게 운영 일자와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그럼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은 비단 금요일 밤마다 열리는 공연 ‘금주악단’이나 가게 구석을 배회하는 고양이들 때문만은 아니다. “다행히 손님들이 찾아와줘서 6년째 버티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그저 이 까다롭게 차려낸 음식들에 대한 겸양의 표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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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bar.jpg 김대철 대표’s Pick
레리치 비스포크 숍 레리치의 홈페이지는 과묵하다. 들어서면 부연 없이 레리치 수트 차림의 남자 상반신 사진 하나만을 보여주는데, 심지어 흑백이다. 어떤 메뉴를 클릭해도 오직 수트 사진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무음 영상을 보여줄 뿐이며 홈페이지를 통틀어 레리치에 대한 설명은 단 한 구절뿐이다. “시간, 공간, 섬세함, 공감(감정이입), 창의성 그리고 장인 정신이 2005년 이래로 레리치가 수트에 구현해오고 있는 것들입니다. 저희는 레리치 건물 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수트에 64시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순수하게 잡아 넣습니다.” 그래서 어떠냐면, 사실 홈페이지를 훑고 나면 꼭 레리치의 수트를 입는 감흥을 상상하게 된다. 가타부타 설명을 줄일 때 더 선명히 보이는 미감이 있고 더 풍부해지는 심상이 있을진대, 비스포크 수트를 입는다는 것은 특정한 ‘태도’를 입는 것에 다름 아닐 테니까. 레리치 건물도 마찬가지다. 탁 트인 뷰를 자랑하는, 10벌 안팎의 수트가 걸린 간명한 1층 실내는 흡사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반면 지하에서는 일곱 명의 장인이 쉴 새 없이 그리고, 자르고, 바느질하며 비스포크 수트를 만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건물 자체가 레리치 수트에 대한 일종의 은유랄까. 자꾸만 레리치의 수트를 입는 감흥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1층에서나, 지하에서나 마찬가지다.

 

 

자세한 내용은 루엘 4월호에서.....

 


에디터 오성윤

포토그래퍼 이기석

출처 루엘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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